BMW는 왜 ‘강남 쏘나타’ 됐을까?

2011-05-17 18:17

야성적 성능·디자인에 여성성 가미·부드러운 카리스마로 女心 장악
사모님들의 최고 액세서리




#1. 지난 12일 낮 3시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오거리. 기자는 5분여 동안 지켜서서 운행하는 차량들을 조사했다. 1위는 예상대로 현대자동차(상용차 포함). 76대로 가장 많았다. 2위는 당연히 기아차, 르노삼성차,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중 하나이겠지. 그러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놀랍게도 BMW가 42대나 됐다. 기아차는 39대로 3위에 머물렀다.

요즘 BMW를 ‘강남 그랜저’ ‘강남 쏘나타’라고 부른다더니... 대한민국 유행의 중심이라 불리는 압구정동, 청담동, 강남역 한복판을 BMW가 사실상 정복한 셈이다.

#2.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모 중국음식점. 이 자리에는 강남 모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어머니 15명이 함께 자리를 했다.

2년 전 혼다의 베스트셀링 SUV인 CR-V를 탄 A(44)씨. 그녀는 바로 옆에 앉아 있는 B(43) 씨 때문에 왕창 자존심이 상했다. 주차장에서 B씨가 신형 BMW 528i에서 내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틀 후 A씨는 남편과 함께 BMW 전시장을 찾아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는 520d모델을 계약했다. 5년 할부 구매였지만 상관없었다.

강남 아줌마들에게 최고의 액세서리는 샤넬ㆍ루이비통 가방이나 로로피아나 스카프가 아니라 BMW 자동차 키라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수입차 시장 판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BMW는 8039대를 팔아 2위(메르세데스-벤츠 6030대)를 크게 따돌렸다. 전년 대비 판매성장률은 105.8%. 2위를 기록한 푸조(65%)나 3위의 메르세데스-벤츠(24.5%)에 비해 월등하다. 이러한 속도라면 후발 경쟁업체들이 따라잡기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독주’다.

외산 명차에는 벤츠도 있고 아우디도 있다. 또 한때 선풍적 인기몰이를 했던 렉서스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 BMW일까. 그 비결은 무엇일까.

▶여심(女心)을 사냥하라 = BMW코리아는 모든 마케팅을 여성의 취향에 맞춰 나가고 있다. 행사는 작은  바(Bar)나 건물 주차장을 이용한다. 소박하다. 기존의 돈만 처바르는(?) 식의 대규모 이벤트는 아예 퇴출시켰다.

대신 머리를 쓴다. 뉴 5시리즈와 7시리즈를 출시하기에 앞서 진행한 ‘클로즈드룸(Closed Room)’ 이벤트가 대표적인 사례. 신비주의 마케팅을 콘셉트로 한 이 행사는 타 업체들이 벤치마킹에 나설 정도로 톡톡효과를 봤다. 여성 고객들이 쉽게 BMW의 디자인과 기술, 철학에 대해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방송 드라마 협찬 등도 물량보다는 여성 시청자에게 먹힐 만한 작품을 제대로 골라 집중한다.

디자인과 성능에서도 여성성을 강화하고 있다.

요즘 BMW가‘ 강남 그랜저’‘ 강남 쏘나타’라고 불릴 정도로 압구정동, 청담동 등 강남 일대에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강남 아줌마들에게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샤넬ㆍ루이비통 가방이 아니라 BMW 자동차 키라는 얘기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지난 2009년 출시된 6세대 모델은 네덜란드 출신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사장의 작품. 그는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모터쇼에서 헤럴드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크리스뱅글의 남성적 디자인에 앞으로는 더욱더 엘레강스함을 가미할 것”이라며 여성성을 강조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변화는 디자인뿐 아니라 승차감 주행성능 등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6세대 5시리즈가 처음 출시됐을 당시 일부 고객들은 “BMW의 야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며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 같은 안락함만 느껴진다”고 말해 기대보다는 혹평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다. 기존 BMW의 주행성능에서 가장 큰 특징인 빠른 응답성에 렉서스의 부드러운 승차감이 적절히 합쳐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만족하는 프리미엄카가 된 것이다. 심지어 경쟁 차종이었던 렉서스 ES350운전하던 여성 운전자들마저 BMW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반해 차를 바꾸기에 이렀다.

BMW의 최대 국내 딜러인 코오롱모터스의 구승회 과장은 “전체 판매량 가운데 40%가 강남 고객들”이라며 “특히 강남의 경우 차량 소유 명의는 남성 고객 혹은 법인차량이어도 실수요자는 여성인 경우가 절반 이상이어서 여성이 차량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처음만 좋은’ 수입차? 나중에도 좋아야...=국내 수입차 고객들의 불만은 단연 빈약한 애프터서비스 망이다.

BMW코리아는 현재 총 29개의 서비스센터를 갖추고 있다. 수입 자동차 업체 중 단연 1위다. BMW의 무서운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아우디의 AS센터는 아직 17곳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하고 있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의 경우 AS센터가 전국에 딱 한 곳에 불과할 정도다.

하지만 BMW코리아 내부에서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판매대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2011서울모터쇼에서 “올해 안에 AS센터를 41곳까지 늘려 수입차 업체들 가운데 명실상부한 최고 최다 AS망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고객들은 1000만~2000만원을 주고 산 국산 차량은 언제 어디서든 척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억대를 주고 산 차량이 제때 정확한 AS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고객들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S망을 확충하는 것이 성장하는 자동차 업체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BMW를 경험하게 하라= 지난 1999년 2월 BMW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계열사인 영국의 ‘로버’그룹이 심각한 적자의 늪에 빠지자 대주주인 콴트(Quandt) 가문이 피체스리더 회장을 경질했기 때문이다.

바통을 넘겨 받은 현 경영진은 BMW의 다른 길을 찾았다. 전통적인 세단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신개념 SUV인 X5가 나왔다. Z8 쿠페, X6, Z4, 그리고 최근 출시된 그란투리스모(GT)까지 장르를 파괴한 마치 콘셉트카 같은 차량들이 판매 대리점에 나왔다. BMW가 자동차 업계의 ‘이단아’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지난해 9월에는 BMW 액티브 하이브리드 X6와 BMW 액티브하이브리드7 등 판매량보다는 BMW의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모델들도 한국 시장에 내놓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차들... 그러나 차만 좋다고 팔리는 것은 아니다. BMW코리아는 실구매로 연결시키기 위해 화끈한(?) 시승, 이른바 체험마케팅을 나서고 있다.

최근 열렸던 BMW X 패밀리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시승행사가 대표적인 예. 이 행사는 일반 고객들이 신형X3와 X5, X6 등 X 패밀리의 다양한 모델들을 일반도로, 오프로드 등에서 직접 타볼 수 있게 했다. 


이런 시승행사는 언론사 자동차 담당 기자나 동호회원들의 전유물이었던 형식을 깨고 문호를 활짝 개방한 것이다. BMW의 한 딜러는 "그동안 시승행사에서 소외됐던 일부 여성 고객들은 시승 직후 현장에서 계약을 하는 일까지 생길 정도"라고 귀띔했다.

BMW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도, 가장 고급스러운 차도, 가장 빠른 차도 아니다. 한 발 앞서 시대를 읽고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열린 마음이 BMW를 세계 최고의 차로 끌어올렸다.

앞서 가는 데는 모험이 필요하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BMW는 철저하다. 하지만 빠르다. 곧바로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BMW 강남 대첩’의 최대 비결이다.

윤정식 기자/yj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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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佛 '록시땅'社 가이거 CEO와 보송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상품개발 천재" "경영 탁월" 서로 믿고 상대방 노터치
자연주의 화장품社 동업 1994년 매장 3개로 시작 100개국 1500개로 키워
자신이 갖지 못한 더 훌륭한 반쪽을 상대방에게서 구하고 함께 성공 일궈
해마다 휴가도같이 보내며 사업 전략 논의

프랑스의 자연주의 화장품 기업 '록시땅(L'OCCITANE)'은 양쪽 뇌(腦)를 가졌다. 오른쪽 뇌(감성·感性)는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인 올리비에 보송(Olivier Baussan·58)씨, 왼쪽 뇌(이성·理性)는 CEO인 라이놀트 가이거(Reinold Geiger·63)씨다.

보송씨와 가이거씨가 동업을 시작한 1994년 매장 3곳뿐이던 로컬기업 록시땅은, 오늘날 100개 국가에 1500개 매장을 가진 글로벌기업이 됐다. 그동안 기업가치는 1300배 넘게 커졌다. 280만달러 투자로 시작한 개인기업이 시가총액 37억달러인 상장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0초에 하나씩 팔린다는 핸드크림이 대표상품이다.

록시땅의 보송씨와 가이거씨는 기업인으로서 자신이 갖지 못한 '더 훌륭한 반쪽(better half)'을 상대방에게서 구하며 성공을 함께 일궜다.

원래 보송씨는 실패한 경영자였다. 1976년 록시땅을 창업했지만 회사를 키우지 못했고, 벤처캐피털의 먹잇감이 돼 경영권을 빼앗길 상황에 빠졌다. 자연주의 화장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를 사로잡는 스토리텔링을 가미하는 노하우(know-how)는 특별했지만, 경영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었던 탓이다.

가이거씨는 한때 열정이 식은 사업가였다. 젊어서 사업으로 큰돈을 번 덕에 아쉬울 것이 없었다. 몇 년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일단 시작하면 죽도록 일한다" "밑지는 장사는 절대 안 한다"는 강한 근성을 가진 비즈니스맨이었다. 결국 새롭게 도전할 만한 사업, 성장시킬 수 있는 사업을 찾으러 다시 나섰다.

록시땅을 구원할 투자자를 찾던 보송씨, 열정과 능력을 다시 발휘할 대상을 모색하던 가이거씨. 두 남자는 1994년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가이거씨는 고령사회에 접어든 선진국, 미용에 대한 지출이 커지는 신흥국 모두에서 자연주의 화장품의 수요가 자라나고 있다고 봤다. 그는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담은 자연주의 화장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면 틀림없이 성공한다"며 보송씨의 손을 잡았다.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보송씨는 시를 쓰고 식물을 돌보는 낭만주의자다. 록시 땅의 자연주의 화장품은 그의 꿈꾸는 듯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 록시땅 제공
두 남자의 천성(天性)은 상극(相剋). 문학을 전공하고 시를 쓰며 식물을 돌보는 보송씨, 스키 챔피언에 MBA 출신으로 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가이거씨. '낭만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만난 셈이다.

하지만 두 남자는 각자의 강점은 키우고, 약점은 버리는 '스마트 초이스(smart choice)'로 성공했다. 프로방스의 자연미(自然美)를 담은 화장품 개발은 보송씨, 글로벌 마켓 진출을 겨냥한 대담하고 치밀한 경영은 가이거씨로 역할을 나눴다.

두 남자의 결합은 '마리아주(mariage)'로 불린다. 결혼(結婚) 또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宮合)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이룬 리더십이다. 경영학자들이 '상호보완적 리더십(complementary leadership)'이라고 부르는 경영진 구성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상호보완(相互補完) 리더십이 성공하려면 '4개의 기둥'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고 분석했다. 4개의 기둥은 '신뢰' '커뮤니케이션' '공동의 목표' '일치된 노선'이다.

중심 기둥은 리더 간의 '신뢰'다. 서로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존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보송씨는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가이거씨에게 백지위임할 정도로 신뢰가 깊다.

회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동의 목표'와 '일치된 노선'을 형성해야 한다.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어떤 길로 갈 것인지를 대화와 설득을 통해 확정하는 것이다. 보송씨와 가이거씨는 해마다 휴가를 함께 보내며 사업전략을 논의한다. 덕분에 동업을 시작하고 처음 10년 동안 적자(赤字)를 겪었지만 비즈니스모델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17년 동안 상호보완적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발휘해 온 록시땅의 올리비에 보송씨와 라이놀트 가이거씨를 Weekly BIZ가 지난달 19~20일 프랑스에서 잇따라 만났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마노스크(Manosque)에 있는 록시땅(L'OCCITANE) 공장. 올리비에 보송(Baussan)씨는 검은색 진바지에 푸른색 작업복을 걸치고 나타났다. 얼굴은 땀범벅이었고, 옷에는 풀잎이 묻어 있었다. 화장품 원료 식물인 올리브와 라벤더를 만지다가 나왔다고 했다.

"CEO 가이거씨는 진정한 의미의 비즈니스맨입니다. 프로방스의 작은 회사를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나는 그에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록시땅의 글로벌비즈니스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화상전화로 파리 사무실로 연결된 라이놀트 가이거(Geiger)씨. 검은색 정장과 흰색 셔츠 차림인 그는 뿔테 안경을 꺼내 쓰고 메모를 해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보송씨는 내가 갖지 못한 크리에이터(creator·창조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장품 개발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에서 나오죠. 서로의 '믿음'을 기반으로 회사를 키워왔어요."

보송씨와 가이거씨는 자신들의 공약수를 '믿음'으로 요약했다. 상호보완적 리더십이 성공하기 위한 4대 요소의 핵심인 '신뢰'와 같은 말이다. 나머지 요소인 '커뮤니케이션' '공동의 목표' '일치된 노선'도 모두 신뢰에서 출발한다.

■신뢰…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청소년 시절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스키 선수였던 라이놀트 가이거씨는 경영 대학원을 마치고 여러 사업에 성공한 베테랑 비즈니스맨이다. 그의 대담하고 치밀한 경영전략이 록시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게티이미지
"자연주의 화장품 개발은 여전히 보송씨에게 맡깁니다. 누구도 그의 창조성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처음부터 믿었어요."(가이거씨)

"나는 록시땅 전체 지분의 4%가 넘는 지분을 가진 공동주주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주주총회에 가지도 않아요. 의결권은 전부 가이거씨에게 맡깁니다. 그의 경영능력을 확실하게 믿으니까요."(보송씨)

신뢰는 리더들이 서로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존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리더 간의 신뢰는 흔히 상대방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형태로 나타난다.

보송씨와 가이거씨의 철저한 역할분담이 좋은 사례다. 1994년 가이거씨를 처음 만났을 때 보송씨는 회사를 키우려고 불러들인 벤처캐피탈에 경영권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자연주의 화장품의 성공을 확신한 가이거씨는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지분을 2년에 걸쳐 차근차근 사들였다. 그러면서 보송씨의 역량도 꼼꼼하게 살폈다. 결국 1996년 보송씨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다시 경영에 참여시켰다. 화장품 원료 발굴, 포장재 디자인, 소비자에게 호소력 있는 스토리텔링 개발과 같은 업무를 믿고 맡겼다. 깊은 신뢰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보송씨는 자신의 의결권을 가이거씨에게 전권위임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신뢰에 답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차이가 발전을 낳도록

"보송씨는 프로방스에 주로 있고, 나는 해외출장을 많이 다닙니다. 하지만 전화·이메일·팩스로 언제든지 대화합니다. 휴가도 함께 보내며 회사 전략을 논의합니다."(가이거씨)

"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가이거씨가 반대의견을 가지는 경우도 많지요. 오랜 논쟁 끝에 아이디어를 한 단계 끌어올려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진정한 파트너십이죠."(보송씨)

리더들이 심각한 의견 차이를 딛고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다. "상호보완의 효율을 높이려면 커뮤니케이션의 농도가 짙어져야 한다"고 HBR은 조언했다.

보송씨와 가이거씨도 극단적인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록시땅의 최대 히트상품인 핸드크림의 생산을 중단시킬 뻔한 일이었다. 핸드크림 원료인 시어버터(shea butter)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생산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이거씨는 "프로방스가 아닌 곳에서 생산된 원료는 록시땅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구매중단을 검토했다. 보송씨는 "부르키나파소의 가난한 여성들이 생산하는 시어버터를 공정한 가격을 주고 사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두 사람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문제를 풀었다. 보송씨는 가이거씨를 부르키나파소까지 데려가 시어버터가 갖는 의미를 설득했다. 가이거씨도 사업적 관점에서 검토를 거듭했다. 결국 "자연주의 화장품 소비자들은 사회적 약자와 공정무역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시어버터 구매는 기업 이미지 개선과 매출 확대에 모두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시장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록시땅은 시어버터 구매량을 2배로 늘리고 부르키나파소 여성들을 위한 복지재단도 설립했다.

록시땅이 생산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의 원료인 라벤더를 농부가 수확하는 모습. / 록시땅의 매장은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모습이다. 세계 주요도시 한복판에 대형매장을 두고 인지도를 높이는 것 이 록시땅의 핵심 전략이다.
■공동의 목표와 일치된 노선… "동상이몽 없어야"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담은 화장품으로 밀고 나가면 틀림없이 승산이 있다고 뜻을 모았죠."(가이거씨)

"구체적인 비즈니스모델은 전문가인 가이거씨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죠."(보송씨)

HBR은 "리더 간에 공동의 목표가 없으면 상호보완적 리더십은 무너질 것이며, 일치된 노선이 없다면 공동의 비전도 쓸모없을 것"이라고 했다. 리더들이 서로 다른 곳을 목적지로 잡는다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또 같은 목적지라도 리더마다 선택하는 길이 다르다면 역시 수많은 혼선을 겪을 것이다.

보송씨와 가이거씨의 공동의 목표, 일치된 노선은 굳건했다. 동업을 시작하고 처음 10년 동안 적자(赤字)를 겪었지만 뉴욕 맨해튼, 도쿄 시부야와 같은 국제도시 한복판에 대형매장을 열고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전략을 꿋꿋하게 지켰다. 결과는 대성공.

HBR은 "최우선 과제들(priorities)에 대해 리더들이 합의하지 못한다면 상호보완적 리더십은 위기를 맞는다"고 했다. 머리가 2개인 조직, 동상이몽(同床異夢)인 리더들이 일으킬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비슷한 사람만 모이면 시너지 없어"

"두 사람은 '물과 불'과 같은 관계입니다. 너무 차갑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게 서로를 지켜주며 훌륭한 균형을 이루죠."(보송씨)

"두 사람이 항상 동의한다면 애초부터 시너지는 기대할 수 없겠죠.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지난 17년 동안 닮은꼴이 됐다면 오늘의 록시땅은 없을 겁니다."(가이거씨)

HBR은 상호보완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리더 간에 차별성보다 유사성이 커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송씨와 가이거씨는 태생부터 달랐던 것이 오히려 득(得)이 됐다. 프랑스 출신으로 문학을 전공한 보송씨는 시를 쓰고 식물을 돌보는 낭만주의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공학·경영학을 공부한 가이거씨는 현실주의자다.

보송씨는 오른쪽 뇌(감성)가 됐고, 가이거씨는 왼쪽 뇌(이성)가 됐다. 보송씨가 꿈꾸는 듯한 상상력을 발휘해 개발한 자연주의 화장품, 가이거씨의 대담하고 치밀한 비즈니스 전략이 환상의 콤비를 이루며 글로벌 마켓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이 뒤섞여 각자의 강점은 놓치고, 약점만 키우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은 것이 록시땅의 성공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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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돈을 기업 옥죄는 칼로 쓰겠다는 건가
<칼럼>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국민연금 통한 기업 경영권 개입 시사
국민 노후보장 위해 운용돼야 할 공적 연금이 권력의 지렛대로 전락
이의춘 편집국장 (2011.04.26 20: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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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민돈으로 조성된 국민연금으로 대기업을 옥죄려는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26일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의 경영권 개입을 시사해 파문을 낳고 있다.

곽 위원장은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성실납세와 동반성장 등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견제할 효과적인 수단으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의 관료주의 견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 촉진, 대기업의 중기업종에 대한 ‘문어발식 확장’ 차단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대기업 경영진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

곽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국민세금으로 마련된 공적 연금으로 정부에 밉보인 재벌을 통제하고, 길들이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재계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문제다.

그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세청 등 범정부차원의 대기업 압박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

정부는 동반성장과 상생,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걸면서 대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해왔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주요그룹의 중기협력사 지원, 정유사 및 이동통신사 등의 가격인하 요구 등을 관철시켰다. 삼성, SK, 한화, 태광산업, 금호석유화학 등 일부 그룹의 경우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조사 등을 강도높게 받아왔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한술 더 떠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눠갖는 ‘이익 공유제’ 방안까지 내놓아 재계와의 대치전선을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물가안정과 상생을 위해서라면 대기업의 팔을 다소 비트는 것도 필요하다”고 서슴없이 발언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자칭 공인회계사라면서 “정유사의 가격구조를 파헤치겠다”고 위협하면서 “정유사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의 물가안정에 협조해야 한다”고 고압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깎는 대기업 임원은 해고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다.

곽 위원장의 4.26 발언은 재계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가격인하 등 경영행위에 이어 재계 총수들의 경영권까지 손보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곽 위원장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들어갈 경우 정부가 국민돈으로 대기업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권에 밉보인 기업들을 혼내주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공적 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손보겠다고 국민연금을 걷은 것은 아니다. 자칫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오인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곽위원장 방안대로 국민연금이 대기업 경영권을 견제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사태가 올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로 부상한다면 상장기업의 공기업화가 가속화하고, 경영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비정상적인 경제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정부나 사회단체의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기업 경영권 개입논리에는 대기업과 오너를 옥죄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있다. 한국 재계를 이끌어가는 삼성전자를 표적으로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곽 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삼성전자의 지분은 5.00%로 이건희 회장 지분(3.38%)보다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이 회장 개인지분보다 많으므로 삼성전자의 경영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삼성전자가 기존 핸드폰시장에 안주해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돌풍에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꼽았다. 이러니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전자와 이건희회장의 경영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감시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포스코와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도 문어발확장으로 주주가치가 침해되고 있으므로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국민연금이 이 회장보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다는 논리에는 소수지분을 가진 총수의 전횡과 황제경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좌파정부 시절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 반대기업 시민단체들이 단골메뉴로 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재벌의 비민주성을 언급할 때마다 나오는 대목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견강부회한 측면이 많다. 주식회사는 기본적으로 1인1표가 아니라, 1주(株) 1표의 주권(株權) 개념이 적용될 뿐이다. 주식회사는 개인들의 동등한 주권이라는 개념위에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상법상 주권은 정치민주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사실 국민연금도 소수주주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지분분포를 보면 이회장(3.38%), 부인인 홍라희 여사(0.74%), 아들인 이재용 사장(0.57%) 등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생명(7.45%), 삼성화재(1.26%) 등 이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상당수 갖고 있다.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삼성전자 주식의 15.25%를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에 비하면 소액주주인 셈이다.

이 회장이 소수주주임에도 불구, 삼성카드와 삼성에버랜드 등 계열사를 동원한 순환출자로 삼성전자 경영을 전횡한다는 비난은 상법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법은 법인의 주식소유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은 부채를 활용했건, 상호출자를 사용했건 해당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과 법인을 동등한 주주로 인정하고 있다.

상법에 개인들의 주권(主權)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주식소유에 따른 주권(株權)만 있다.

이 회장 지분만 갖고 국민연금보다 주식을 적게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 회장이 소액지분만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모르고 하는 것이다. 미래기획위원회가 지난 좌파정부 시절 주주자본주의의 나팔수가 된 참여연대의 잘못된 시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순환출자로 이루어진 대기업 계열사들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 계열사들의 주식 보유를 가공(架空)자본으로 매도하고, 지배권을 가진 개인지분으로 환원해야 한다면 소액주주들의 지분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소액주주들의 법인보유 지분에 대해 개인들의 궁극적 지분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컨대 50%의 소액주주 지분 중에서 30%를 펀드 A가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 펀드에 투자한 개인들의 수가 10명이라고 할 때, 개인들이 3%씩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가? 기관들의 투자방식을 감안하면 이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기관들은 원리금만 갖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금융기법을 사용해서 원금이상의 투자를 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들은 1만%이상의 높는 레버리지를 사용해서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들의 궁극적인 지분에만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기관들의 레버리지 활용도에 따라 기업의 지배권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상법은 이같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위해 개인과 법인의 소유권을 똑같이 인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법에 맞게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놓고 소액주주의 황제경영, 순환출자에 의한 가공자본 등으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신장섭 저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참조)

공적연금의 경영권 개입은 실효성도 없다. 기업들의 경영상황을 연기금이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당기업에 대해 적절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학자들은 미국의 캘퍼스(캘리포이나주 공무원 연금) 등을 예로 들면서 외국 연기금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과 지속 가능성장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며 곽위원장을 거들었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 학자는 아예 배제하고, 미래기획위원회의 방안에 찬성하는 학자만 초청해 응원부대로 활용한 셈이다.

그러나 캘퍼스 등 외국연기금은 주주의결권 행사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두고 있다.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외부의 의결권 행사 전문기관에 대행시키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연금과 캘퍼스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성 연금으로 출범했지만, 캘퍼스는 특수직역 연금으로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국민연금이 대기업들의 주식을 과도하게 많이 보유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증시침체로 투자 손실을 볼 경우 국민들의 소중한 쌈짓돈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거 매집해서 기업경영권에 간섭할 경우 해외투기자본과 동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년전 SK에너지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주식을 대거 매집했던 소버린파문을 잊어버려선 안된다. 만약 국민연금이 대기업을 혼내준다며 소버린과 같은 투기자본와 손을 잡고 특정 대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벌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익에 반하는 주권행사가 될 것이다.

일부 해외펀드의 경우 경영권 행사를 천명하고, 주식을 매집하는 수가 있다. 이들 펀드는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경영권을 장악해서 기업 가치를 올린 후 보유 주식을 팔아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섰다. 시가총액만 100조원을 훨씬 넘는 한국의 대표우량주다. 외국 주주들은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해 시시콜콜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경영을 잘해서 배당을 많이 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외국투자자들은 이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이 회장이 황제경영을 한다며 경영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정부가 대기업 통제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운용돼야 할 공적 연금이 재계를 혼내주는 권력의 지렛대로 전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이 5%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39개사에 이른다. 적립규모도 지난해 324조원으로 커졌다. 천문학적으로 쌓인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살림을 위한 쌈짓돈이다. 미래기획위는 이 돈이 얼마나 투명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지분 보유기업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선 곤란하다.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기업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빌미로 정치논리와 관치논리에 함몰돼 기업을 옥죄어서는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지나치게 경영권을 간섭할 경우 기업경영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되레 악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미래기획위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쓰는 게 급선무다. 국민들의 노후 쌈짓돈이 투명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중기 상생과 동반성장, 공정사회를 실현하는 도구로 국민연금을 활용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정권이 이렇게 나오면 기업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고물가와 청년실업 악화, 빈부격차 심화 등에 따른 민심이반을 ‘대기업 때리기’로 막아보려 한다면 더 큰 후유증을 가져올 것이다.

재계는 최근 일련의 대기업 옥죄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일부 그룹들에 대한 탈세 등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 조사, 가격인하 압박,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하도급법 위반 무더기 제재, 일감몰아주기 과세 추진 등...

기업의 명백한 불법행위는 사법처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전방위 압박은 심상치 않다. 그래서 재벌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재계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eindly)’로 출범한 현 정부가 ‘비즈니스 프레스(business press)로 변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일부에선 가장 반시장적인 정부라는 서운함도 내비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압박의 배경에는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재벌을 통제 내지 장악해야 한다는 정권차원의 원모심려도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곽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청와대의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부와 재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경제회복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금융위기이후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양극화및 빈부격차 해소,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민관의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재계도 대한민국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위한 대승적 협조는 해야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에 대한 손길을 내미는 것은 시급하다. 함께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창출에도 힘써 고용없는 성장을 극복하고, 청년실업의 문제 해소에도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수년간 고환율과 저금리의 혜택을 바탕으로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만 몰리고 있다는 국민들의 불만도 나몰라해서는 안된다. 기업의 박애정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민심 불만의 해소를 위해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와 생산,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을 적대시하는 것은 알을 낳은 암탉을 못살게 굴어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생과 동반성장, 일자리창출이 이뤄지도록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성장의 견인차인 대기업을 옥죄고, 그들의 팔목을 비트는 것은 하책일 뿐이다. 친기업정책이 친서민정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반기업에 치중한다면 경제성장과 투자, 일자리는 물론 민심도 놓칠 뿐이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청와대내 진보파를 자처하는 곽위원장은 열린 마음으로 재계와 대화를 하기 바란다. 청와대와 경제팀도 마찬가지다.

경제팀과 재계의 대화가 재개돼서 상호간 이견을 좁혀야 한다. 쌓인 갈등과 오해도 풀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가 재계에 대해 위협구를 던지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 투수(기업)와 포수(정부)가 한몸이 돼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데일리안 = 이의춘 편집국장 junglee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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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밝게빛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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