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돈을 기업 옥죄는 칼로 쓰겠다는 건가
<칼럼>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국민연금 통한 기업 경영권 개입 시사
국민 노후보장 위해 운용돼야 할 공적 연금이 권력의 지렛대로 전락
국민 노후보장 위해 운용돼야 할 공적 연금이 권력의 지렛대로 전락
이의춘 편집국장 (2011.04.26 20: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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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26일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의 경영권 개입을 시사해 파문을 낳고 있다.
곽 위원장은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성실납세와 동반성장 등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견제할 효과적인 수단으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의 관료주의 견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 촉진, 대기업의 중기업종에 대한 ‘문어발식 확장’ 차단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대기업 경영진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
곽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국민세금으로 마련된 공적 연금으로 정부에 밉보인 재벌을 통제하고, 길들이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재계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문제다.
그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세청 등 범정부차원의 대기업 압박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
정부는 동반성장과 상생,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걸면서 대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해왔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주요그룹의 중기협력사 지원, 정유사 및 이동통신사 등의 가격인하 요구 등을 관철시켰다. 삼성, SK, 한화, 태광산업, 금호석유화학 등 일부 그룹의 경우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조사 등을 강도높게 받아왔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한술 더 떠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눠갖는 ‘이익 공유제’ 방안까지 내놓아 재계와의 대치전선을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물가안정과 상생을 위해서라면 대기업의 팔을 다소 비트는 것도 필요하다”고 서슴없이 발언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자칭 공인회계사라면서 “정유사의 가격구조를 파헤치겠다”고 위협하면서 “정유사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의 물가안정에 협조해야 한다”고 고압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깎는 대기업 임원은 해고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다.
곽 위원장의 4.26 발언은 재계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가격인하 등 경영행위에 이어 재계 총수들의 경영권까지 손보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곽 위원장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들어갈 경우 정부가 국민돈으로 대기업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정권에 밉보인 기업들을 혼내주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공적 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손보겠다고 국민연금을 걷은 것은 아니다. 자칫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오인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곽위원장 방안대로 국민연금이 대기업 경영권을 견제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사태가 올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로 부상한다면 상장기업의 공기업화가 가속화하고, 경영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비정상적인 경제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이 사실상 정부나 사회단체의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기업 경영권 개입논리에는 대기업과 오너를 옥죄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있다. 한국 재계를 이끌어가는 삼성전자를 표적으로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곽 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삼성전자의 지분은 5.00%로 이건희 회장 지분(3.38%)보다도 많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이 회장 개인지분보다 많으므로 삼성전자의 경영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삼성전자가 기존 핸드폰시장에 안주해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돌풍에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꼽았다. 이러니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전자와 이건희회장의 경영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감시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포스코와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도 문어발확장으로 주주가치가 침해되고 있으므로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국민연금이 이 회장보다 지분을 많이 갖고 있다는 논리에는 소수지분을 가진 총수의 전횡과 황제경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좌파정부 시절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 반대기업 시민단체들이 단골메뉴로 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재벌의 비민주성을 언급할 때마다 나오는 대목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견강부회한 측면이 많다. 주식회사는 기본적으로 1인1표가 아니라, 1주(株) 1표의 주권(株權) 개념이 적용될 뿐이다. 주식회사는 개인들의 동등한 주권이라는 개념위에 만들어져 있지 않다. 상법상 주권은 정치민주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사실 국민연금도 소수주주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지분분포를 보면 이회장(3.38%), 부인인 홍라희 여사(0.74%), 아들인 이재용 사장(0.57%) 등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생명(7.45%), 삼성화재(1.26%) 등 이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상당수 갖고 있다.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삼성전자 주식의 15.25%를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에 비하면 소액주주인 셈이다.
이 회장이 소수주주임에도 불구, 삼성카드와 삼성에버랜드 등 계열사를 동원한 순환출자로 삼성전자 경영을 전횡한다는 비난은 상법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법은 법인의 주식소유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은 부채를 활용했건, 상호출자를 사용했건 해당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개인과 법인을 동등한 주주로 인정하고 있다.
상법에 개인들의 주권(主權)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주식소유에 따른 주권(株權)만 있다.
이 회장 지분만 갖고 국민연금보다 주식을 적게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이 회장이 소액지분만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와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모르고 하는 것이다. 미래기획위원회가 지난 좌파정부 시절 주주자본주의의 나팔수가 된 참여연대의 잘못된 시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순환출자로 이루어진 대기업 계열사들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 계열사들의 주식 보유를 가공(架空)자본으로 매도하고, 지배권을 가진 개인지분으로 환원해야 한다면 소액주주들의 지분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소액주주들의 법인보유 지분에 대해 개인들의 궁극적 지분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컨대 50%의 소액주주 지분 중에서 30%를 펀드 A가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이 펀드에 투자한 개인들의 수가 10명이라고 할 때, 개인들이 3%씩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가? 기관들의 투자방식을 감안하면 이 방식은 타당하지 않다.
기관들은 원리금만 갖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금융기법을 사용해서 원금이상의 투자를 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들은 1만%이상의 높는 레버리지를 사용해서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들의 궁극적인 지분에만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기관들의 레버리지 활용도에 따라 기업의 지배권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상법은 이같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위해 개인과 법인의 소유권을 똑같이 인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법에 맞게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놓고 소액주주의 황제경영, 순환출자에 의한 가공자본 등으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신장섭 저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참조)
공적연금의 경영권 개입은 실효성도 없다. 기업들의 경영상황을 연기금이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당기업에 대해 적절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학자들은 미국의 캘퍼스(캘리포이나주 공무원 연금) 등을 예로 들면서 외국 연기금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과 지속 가능성장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며 곽위원장을 거들었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개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 학자는 아예 배제하고, 미래기획위원회의 방안에 찬성하는 학자만 초청해 응원부대로 활용한 셈이다.
그러나 캘퍼스 등 외국연기금은 주주의결권 행사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두고 있다.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외부의 의결권 행사 전문기관에 대행시키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연금과 캘퍼스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성 연금으로 출범했지만, 캘퍼스는 특수직역 연금으로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국민연금이 대기업들의 주식을 과도하게 많이 보유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증시침체로 투자 손실을 볼 경우 국민들의 소중한 쌈짓돈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대거 매집해서 기업경영권에 간섭할 경우 해외투기자본과 동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년전 SK에너지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주식을 대거 매집했던 소버린파문을 잊어버려선 안된다. 만약 국민연금이 대기업을 혼내준다며 소버린과 같은 투기자본와 손을 잡고 특정 대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벌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익에 반하는 주권행사가 될 것이다.
일부 해외펀드의 경우 경영권 행사를 천명하고, 주식을 매집하는 수가 있다. 이들 펀드는 단순 투자가 아니라, 경영권을 장악해서 기업 가치를 올린 후 보유 주식을 팔아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섰다. 시가총액만 100조원을 훨씬 넘는 한국의 대표우량주다. 외국 주주들은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해 시시콜콜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경영을 잘해서 배당을 많이 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외국투자자들은 이 회장 등 현 경영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이 회장이 황제경영을 한다며 경영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정부가 대기업 통제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운용돼야 할 공적 연금이 재계를 혼내주는 권력의 지렛대로 전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이 5%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39개사에 이른다. 적립규모도 지난해 324조원으로 커졌다. 천문학적으로 쌓인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살림을 위한 쌈짓돈이다. 미래기획위는 이 돈이 얼마나 투명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지분 보유기업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선 곤란하다.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기업들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빌미로 정치논리와 관치논리에 함몰돼 기업을 옥죄어서는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지나치게 경영권을 간섭할 경우 기업경영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되레 악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미래기획위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쓰는 게 급선무다. 국민들의 노후 쌈짓돈이 투명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중기 상생과 동반성장, 공정사회를 실현하는 도구로 국민연금을 활용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정권이 이렇게 나오면 기업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고물가와 청년실업 악화, 빈부격차 심화 등에 따른 민심이반을 ‘대기업 때리기’로 막아보려 한다면 더 큰 후유증을 가져올 것이다.
재계는 최근 일련의 대기업 옥죄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일부 그룹들에 대한 탈세 등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 조사, 가격인하 압박,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하도급법 위반 무더기 제재, 일감몰아주기 과세 추진 등...
기업의 명백한 불법행위는 사법처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전방위 압박은 심상치 않다. 그래서 재벌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재계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eindly)’로 출범한 현 정부가 ‘비즈니스 프레스(business press)로 변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일부에선 가장 반시장적인 정부라는 서운함도 내비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압박의 배경에는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재벌을 통제 내지 장악해야 한다는 정권차원의 원모심려도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곽위원장의 발언은 최근 청와대의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부와 재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경제회복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금융위기이후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양극화및 빈부격차 해소,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민관의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재계도 대한민국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기위한 대승적 협조는 해야 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에 대한 손길을 내미는 것은 시급하다. 함께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창출에도 힘써 고용없는 성장을 극복하고, 청년실업의 문제 해소에도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수년간 고환율과 저금리의 혜택을 바탕으로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만 몰리고 있다는 국민들의 불만도 나몰라해서는 안된다. 기업의 박애정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민심 불만의 해소를 위해 대기업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와 생산,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기업을 적대시하는 것은 알을 낳은 암탉을 못살게 굴어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생과 동반성장, 일자리창출이 이뤄지도록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성장의 견인차인 대기업을 옥죄고, 그들의 팔목을 비트는 것은 하책일 뿐이다. 친기업정책이 친서민정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반기업에 치중한다면 경제성장과 투자, 일자리는 물론 민심도 놓칠 뿐이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청와대내 진보파를 자처하는 곽위원장은 열린 마음으로 재계와 대화를 하기 바란다. 청와대와 경제팀도 마찬가지다.
경제팀과 재계의 대화가 재개돼서 상호간 이견을 좁혀야 한다. 쌓인 갈등과 오해도 풀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가 재계에 대해 위협구를 던지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 투수(기업)와 포수(정부)가 한몸이 돼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데일리안 = 이의춘 편집국장 junglee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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